장승백이 사거리 도로공원에 예쁜 꽃수레, 꽃동산이 생겨서 잠시 쉬어갔다.
어떤 몰지각한 사람일까요? 국화 한줌을 송두리체 뽑아가버렸네요.
도심에선 풀 한포기도 예사로 보이지 않습니다.
도로 양옆으로 차들이 달리는 한복판에 강아지풀이 요렇게 무성하게
자라서 신기해보였답니다.
마치 들판에 서있는 기분이었지요. (하지만 잡풀이라고 다 뽑아 버린다네요.)
사진 찍기 싫어하는 녀석, 카메라를 들이대니 표정이 영 아닙니다.
그래도 엄마 고집대로 한컷 찍었습니다.
- 장승백이 유래 -
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로 1777년 할아버지 영조의 뒤를 이어 조선22대 왕으로 즉위하였는데
효성이 지극하였다.
정조는 당쟁의 와중에서 뒤주속에 갇혀 비통하게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잊지 못하여 자주 지금의
수원에 있는 아버지의 묘소인 현륭원을 찾아가 그 애통한 한을 달래며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이곳의 지명이 장승백이가 된 것은 정조의 현륭원 참배와 관련이 있다.
그당시 현륭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을 통과해야 했는데 이 일대는 현대식 건물과 주택들이 들어서
있는 지금과 달리 그 당시에는 낮에도 맹수가 나타날 것만 같은 울창한 숲 지대였다.
정조의 어가는 이곳에서 한번쯤 쉬어가야 했는데 이곳응 숲이 우거지고 인가가 없어 통행인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에 정조는 수행원들에게 이곳에다 장승 한 쌍을 세우게 했는데, 하나는 남자 형상으로 천하대장군이라
이름 붙이고 또 하나는 여자 형상으로 지하여장군이라 이름 붙이라 명했다고 한다.
어명에 따라 이곳에는 곧 두개의 높다란 장승이 세워지게 되었다.
여기에 이렇게 장승을 세운 것은 왕이 안심하고 현륭원으로 행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 후로 이곳은 장승백이란 지명이 붙게 되었으며 정조는 아버지의 묘소 참배시 이 장승 앞에서 어가를
멈추고 쉬어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우리 동작구에서는 2005년 식목일을 맞아, 숲이 울창하였던 장승백이의 옛 모습을 되살리며, 주민과 함께
지명의 유래를 알고, 효도하는 미풍을 살리려는 뜻으로 이곳 장승백이 일대에 큰 소나무를 옮겨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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